News

[문화일보] 파워인터뷰: 박형주 “논문 개수만 세는 학계 풍토서 어떻게 필즈상 나오겠나”

Date: 2014-08-22


img1
▲ 박형주 서울세계수학자대회 조직위원장이 대회가 열리고 있던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미디어룸에서 문화일보와 파워인터뷰를 하면서 대회 개최의 의미, 우리 수학계의 실태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munhwa.com

2014 서울세계수학자대회(ICM)가 지난 13일부터 21일까지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렸다. 전 세계 122개국의 수학자 5193명이 참여해 운영·조직 면에서 역대 가장 성공적인 대회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회 개막 직전 서부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에볼라 바이러스가 유행하면서 해외 수학자들의 대거 불참 사태 등이 우려됐지만 대회 조직위원회와 국제수학연맹(IMU), 한국 보건당국이 발빠르게 대처하면서 기우로 끝났다. 세계의 수학자들과 교류하고 현대 수학의 난제(難題)들을 토론하면서 이번 대회가 한국 수학을 한 단계 끌어올릴 발판을 마련했다는 분석이다. 일반인 참가등록자가 2만 명을 넘어서는 등 수학 대중화의 기틀을 마련한 것도 의미 있는 성과다. 이번 대회는 세계수학자대회 117년 역사상 최초로 여성 및 제3세계 박사 출신 필즈상(Fields Medal) 수상자를 배출해 역대 어느 대회보다 큰 발자취를 남겼다. ‘수학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에서 사상 첫 여성 수상자(마리암 미르자카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와 브라질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수상자(아르투르 아빌라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 석학연구원)가 동시에 나오면서 세계 수학계의 역사에 서울대회가 큰 의미로 남게 됐다. 서울세계수학자대회의 조직위원장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박형주(50) 포스텍 수학과 교수를 지난 18일 코엑스 미디어룸에서 만났다. 박 위원장은 지난 2007년 세계수학자대회 유치위원장을 맡아 1년 10개월 뒤에 2014년 서울대회 개최 결정을 이끌어 낸 일등공신이다. 세계수학자대회 유치와 관련한 대외적인 업무에 7년 이상 종사해 오면서도 박 위원장은 2009년 EBS 수학 다큐 3부작 ‘생명의 디자인’과 2013년 KBS 과학스페셜 2부작 ‘과학 한국, 노벨상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2012년엔 EBS 수학 다큐 5부작 ‘문명과 수학’ 자문 및 인쇄본 감수를 했으며 일간·주간지에 칼럼을 50여 회 기고하는 등 왕성하게 수학 대중화에 앞장서 왔다. 박 위원장은 “빙상강국이 되려면 김연아 선수 같은 천재도 필요하고 많은 동네 스케이트장도 필요하다”며 “수학 선진국이 정말 선진국인데, 우리가 수학 선진국이 되려면 세계적인 수학자도 길러 내야 하고 수학을 대중문화처럼 즐기는 문화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적인 수학경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선 ‘수포자’(수학공부를 포기한 학생)가 양산되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공존하고 있다”며 “미적분을 가르칠 때 ‘뉴턴이 천체의 운동을 설명하려고 미적분을 만들었다’는 역사적 배경도 같이 가르치고, 수학이 왜 살아가는 데 필요한지 동기부여도 해주며 수학을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등의 방향으로 교육과정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발 웨이브가 잘 어울리는 그에게 먼저 세계수학자대회의 한국 개최 의미부터 물어봤다. “2007년에 유치 운동을 시작할 당시 2010년에 인도 개최가 예정돼 있어서 아시아 연속 개최가 사실상 어려워 한국이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때 우리는 한국 수학이 늦은 출발이라는 것, 전쟁의 폐허에서 시작해 1980년대까지 기초가 없었던 것을 보여주고 지금 성장하고 있다는 것, 수학 선진국이라고 주장 안 하고 역사적으로 가장 경이로운 성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우리보다 더 늦게 출발하려는 국가들에 주는 메시지를 던졌고 그게 받아들여졌어요. 국내적인 의미라면요, 우리 목표는 딱 두 개였어요. 좋은 수학연구가 나와서 강국이 돼야겠다는 거고, 둘째는 수학이 대중문화의 중심이 되는 부대효과를 기대했어요. 지금 이뤄질 가능성이 많이 보입니다. 빙상강국이 되려면 김연아 같은 천재도 필요하고 동네 스케이트장도 많이 필요하죠. 이번 수학자대회를 계기로 젊은 수학자들이 자극과 영감을 받고 세계적인 학자와 네트워킹을 통해 공동 연구할 기회가 생기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 주제의 성장인데요, 그동안 만만한 것만 했다면 지금은 세계적인 학자들이 뭘 하는지를 봤으니 그런 정도 수준의 문제, 풀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그런 주제를 다루게 돼 우리 수학의 질적인 성장이 시작될 것입니다. 이게 가장 큰 의미이고, 둘째는 수학자대회에서 하는 각종 대중 프로그램에 상당히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거든요. 수학이 입시 중심의 그런 것만이 아닐 수 있다, 적어도 그런 단초를 사람들이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을 하죠.” ―수학자대회는 구체적으로 뭘 하는 거죠. “제1회 세계수학자대회가 1897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렸으니 117년이 됐습니다. 19세기에 시작한 학회로는 21세기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학회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수학자들이 교류하는 곳입니다. 학문적인 성취가 발표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수학의 성격이나 속성이 이해돼야 하는데요, 보통 과학에서는 좋은 랩(실험실)을 갖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좋은 랩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느냐가 중요하죠. 수학은 실험실 없이 자기 방에서 펜과 연필만 있으면 할 수 있다고 생각됐었는데요, 사실 수학은 자기 생각을 사람들 앞에서 ‘이런 식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검증받습니다. 자신의 아이디어나 연구의 허점이나 구멍에 대한 다른 수학자들의 비판과 지적에 대응하면서 정교해지고 그런 과정에서 난제들이 해결됩니다. 수학의 연구방식은 다른 수학자들과 만나는 것입니다. 이런 워크숍이나 세미나가 수학에서 랩입니다. 수학이 다른 분야보다 학회나 세미나가 월등히 많은 이유입니다. 수학자대회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정리되는 곳입니다. 우리가 여기까지는 아는데 그다음부터는 해결이 안 되고 있다는 것이 정리되고, 난제는 수학자들이 집으로 가져가서 계속 연구해 보고 4년 뒤에 다시 모여서 논의하는 것입니다.” ―경주에서 지난 10∼11일 열린 국제수학연맹 총회에서 한국인 최초로 집행위원에 선임되셨는데, IMU는 어떤 곳이고 집행위원은 무슨 일을 하나요. “IMU는 1919년에 생겼고 세계수학자대회는 1897년에 시작했어요. 2회 대회는 1900년에 하고 다음부터는 4년마다 열려요. 이걸 해보니 상시 조직이 없으면 힘들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1919년 IMU가 생겨요. 미션은 세계수학자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거고요, 필즈상이 생긴 이후에는 필즈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일도 합니다. 이런 것을 통해 현대수학의 흐름에 영향을 주죠. 집행위는 필즈상선정위원회도 구성합니다. 필즈상도 선정위는 비밀 위원회입니다. 국가 간 알력이 있기 때문에 아예 위원회 자체가 비밀입니다. IMU는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산하기관으로, 개발도상국의 수학 지원을 위해 뭘 할 것인지 등도 유네스코와 논의합니다.” 이쯤에서 우리나라 수학교육의 문제점으로 화제를 옮겼다. ―학생들은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 등에서 입상하는 등 수학 실력이 좋은데, 어른들 성적은 별로인 것 같습니다. ‘수학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은 중국은 물론 심지어 베트남에서도 나온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없죠. 왜 이런 겁니까. “2010년 필즈상 수상자인 응오바우쩌우는 고등학교까지만 베트남에서 나오고 대학 교육부터는 프랑스에서 받았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베트남 교육의 산물이라고 볼 수 없고요, 선진국이 아닌 곳에서 교육받은 사람 중에서 필즈상 수상자는 이번 서울대회에서 수상한 브라질 사람 아르투르 아빌라가 유일합니다. 지금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 석학연구원인데, 박사까지 브라질에서 받았습니다. 선진국에서 교육을 내리 받지 않은 사람이 수상한 첫 사례입니다. 또 이번 서울대회에선 필즈상 첫 여성 수상자가 나왔습니다. 이란 출신 마리암 미르자카니 미 스탠퍼드대 교수입니다. 2010년까지 필즈상을 받은 52명이 다 남자였는데, 이번 서울대회 수상자까지 하면 56명 중에 처음으로 여성이 한 명 들어갔습니다. 이분도 테헤란 공대를 나왔지만 박사는 하버드에서 했습니다. 그럼 한국은 어떠냐. 우리나라 젊은 수학자들은 굉장히 잘합니다. 외국에서도 IMO 메달리스트들이 의대도 가고 법대도 가고 그래요. 그런데 우리나라가 처음 출전한 1988년 이후 IMO 메달리스트들을 다 통계 내봤는데, 60% 이상이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고, 그중 많은 사람들이 박사까지 했어요. 한국만의 특이한 현상이에요. 외국은 이 정도 안 되거든요. 2012년도 IMO 입상자 5명 중 3명이 의대에 갔다고 대서특필됐었는데 2013년엔 6명 중에 5명이 수학과를 갔거든요. 언론에서 데이터를 선택적으로 갖다 써서 센세이셔널해진 거죠. 이제까지 총 통계를 내봤더니 60% 이상이 대학을 수학과로 갔어요. 그게 우리의 자산입니다. 처음 출전한 1988년 호주 시드니 IMO에서 동메달을 받은 친구가 김영훈인데, 서울대 수학과 89학번입니다. 박사를 받고, 예일대에서 조교수를 하다가 서울대 교수로 있습니다. 1회 때부터 좋은 전통을 만든 거지요. 후배들이 그런 것들을 배우면서, 한국 수학의 미래를 밝게 보는 근거가 됐습니다. 그럼 왜 필즈상이 안 나오나. 이렇게 총명한 수학자들이 진짜로 필즈상 받을 문제를 해야 하거든요. 이걸 풀면 세계가 깜짝 놀랄 주제가 있어요. 그런 메인스트림 문제를 한국이 안 했어요. 젊은 사람들이 취직하고 승진도 해야 하니까 안 풀리고 시간 걸리고 망해 버릴 거는 안 한다는 거죠. 우리나라는 논문 안 쓰면 연구비도 안 줘요. 항상 논문 수를 세잖아요. 안전한 논문을 써야지 위험한 거 못 붙잡고 있는 거죠. 우리도 이젠 분위기를 바꿔야 합니다. 학문적인 성과를 위해서는 리스크 테이킹을 해야 합니다.” ―많은 학생들이 수학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고 있고, 수학을 어려워합니다. 우리나라 수학교육에 문제가 있나요. “저는 작년까지만 해도 ‘수포자’라는 말이 뭔지 몰랐어요. 통계를 봤더니 수학 포기로 간주되는 학생이 일반고에서는 절반에 육박합니다. 그게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어요. 그래서 가르치는 양을 줄이자는 주장이 있어요. 이런 것을 정말로 주의깊게 잘 판단해야 하는데, 미국과 비교를 하더라고요.” “‘미국에서는 고등학교에서 미적분을 안 가르치는데 한국은 다 가르친다’는 등의 주장이 있는데, 그건 사실을 오도하는 겁니다. 미국에서도 대학을 가려는 학생들은 배워야 합니다. 걔들이 하는 수학은 한국의 미적분보다 더 어려워요. 대학을 가는 그룹을 놓고 비교하면 미국 수학이 더 어려워요. 프랑스 바칼로레아(대학입학 자격시험)는 더 어렵습니다. 바칼로레아는 100% 서술형입니다. 그런데 장점이 있어요. 실수가 용인돼요. 100% 정답을 맞히지 못해도 푸는 과정이 90% 맞으면 90점을 받지만 한국은 사지선다형이니 1%만 틀려도 다 틀린 게 돼버려요. 우리는 실수가 용인되지 않으니, 아이들이 실수 안 하는 식으로 공부하고 실수를 두려워합니다.” ―입시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수학 과외가 성행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미국은 대학별로 따로 시험을 안 봐서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일본이나 프랑스 등 대학단위 시험이 있는 국가와 비교해 보면 내용 자체가 어렵지는 않아요. 한국이 근대화를 이룰 때 교육의 중요성으로, 사람으로 승부한 것이잖아요. 우리가 정보기술(IT)강국이 됐다고 하지만, 교육을 통해 아이들을 준비시키는 일에서 후퇴하면 국가경쟁력에 문제가 생깁니다.” ―수학을 모든 학생들이 배워야 할 필요가 있나요. “지금은 대학에서 뭘 전공하느냐가 전보다 덜 중요합니다. 과거에는 전자회사에 취직하려면 전자과를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죠. 개발경제 시대에는 맞춤교육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금방 새로운 지식이 출연하니까 뭘 많이 안다는 게 큰 의미가 없어요. 지식의 유효기간이 짧습니다. 뭘 전공해서 1∼2년 써먹으면 새로운 지식이 출현하면서 무용지물이 됩니다. 무엇을 얼마나 배워서 사회로 오느냐보다 추세와 흐름을 파악하고 그걸 빨리 배울 수 있느냐가 중요한 시대가 됐습니다. 이젠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생각을 전개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을 요구하는 시대가 됐어요. 수학은 사실 공식을 외우는 것이 아니고 논리적으로 생각을 전개하고 결론을 이끄는 능력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수학이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대가 됐습니다. 수학은 수학자나 과학자, 공학자가 꿈인 아이들만 해야 하는 게 아니고 경제학, 경영학, 사회학 등을 공부할 아이들도 배워야 합니다. 요즘엔 심지어 정치학에서도 수학이 필요합니다. 정치평론가들이 선거 결과를 예측하지만 틀리기 일쑤잖아요. 지난번 미국 대선 때 투표 1개월 전에 50개 주별 결과를 한 개 예외없이 다 맞힌 사람이 있어요. 이 정도는 좌판 깔아도 되는 수준인데, 그게 네이트 실버라는 통계학자였어요. 빅데이터를 이용한 건데, 사람들의 수입·직업·취미·소비패턴 등을 담은 방대한 데이터를 모아 선거 결과를 한 달 전에 정확히 예측했어요. 지금은 마케팅도 빅데이터를 활용해 하잖아요. 옛날엔 한 종류의 카탈로그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냈는데 지금은 다양하게 만들어 놓고 연령, 구매 이력 등 사람들 스타일에 맞춰 보내주잖아요. 온라인 영화서비스 업체 넷플릭스와 세계적 패션브랜드인 자라가 양해각서(MOU)를 맺어 그런 통계 정보를 공유해요. 넷플릭스에서 어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어떤 옷을 산다는, 이런 정보를 공유하며 빅데이터를 영업에 활용하는 회사를 다른 회사들이 어떻게 따라가겠냐고요. 지금은 각계에 수학자들에 대한 수요가 많아요. 할리우드에도 엄청나게 많은 수학자들이 일하고 있어요. 1000명이 넘을지도 몰라요. 애니메이션, 특수효과 등에서 말이죠. 론 페드큐 스탠퍼드대 수학과 교수가 아카데미 특수효과상을 받았어요.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물이 배로 막 넘어오는 장면이 있는데, 기름이나 물 같은 유체의 움직임을 다루는 방정식(navier-stokes)을 이용한 거예요. 처음에 물의 모양이 이랬는데 1초 뒤에는, 2초 뒤에는 어떻게 될까, 이걸 방정식에 대입해서 풀면 좍좍 나와요. 그림을 아무리 잘 그려도 이 방정식으로 하는 거보다 정확하지 않아요. 여기에 할리우드 감독들이 놀란 거예요. 사실 스티브 잡스를 살린 것은 픽사라는 애니메이션 제작사였어요.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나서 들고 나온 돈으로 넥스트라는 컴퓨터회사와 픽사를 만들었는데, 넥스트가 망했어요. 그런데 잡스가 픽사에 수학자를 대거 고용했어요. 그림을 사람 손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방정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연구했거든요. 감독이 어느 장면에서 그림을 확대하라고 하면 10초짜리 장면 하나 새로 만들려고 그림을 수백 장 다시 그려야 되잖아요. 그럼 날 새는 거죠. 그런데 그림을 방정식으로 표현하고 나니 옛날처럼 그림을 다시 그리는 게 아니라 수식으로 표현된 것에서 매개체만 바꿔 주면 돼요. 그래서 픽사가 ‘토이 스토리’를 만들어서 완전히 떴어요. 픽사가 이어서 만든 ‘벅스라이프’도 히트치고, 이게 다 디즈니 영화였거든요. 디즈니가 픽사에 그리는 부분만 외주를 줬는데, 돈이 많이 들잖아요. 그래서 디즈니가 픽사를 샀죠.” 이제 박 위원장의 개인사로 화제를 돌려봤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나온 박 위원장은 미국 UC버클리에서 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무슨 계기가 있었던 걸까. 서울대 의대를 가라는 부친의 말을 듣지 않아서 며칠을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도망다닌 적이 있을 만큼 물리학에 애착이 있었던 그였기에 더욱 궁금했다. “고향인 부여에서 초·중학교를 졸업하고 공주로 유학을 갔어요. 통학도 하고 자취도 하면서 공주사대부고를 다녔는데, 1학년 때 서점에서 아인슈타인 영어 전기를 사서 읽고 물리학을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그 나이 때, 감수성이 강한 청소년 때는 한 권의 책에 인생이 좌우되기도 하잖아요. 그 뒤로 한번도 다른 걸 생각 안 했어요. 저는 고 1말에 학교를 그만두고 다음 해에 검정고시를 봐서 대학을 동기들보다 1년 일찍 들어갔어요. 1982년에는 서울대에서 물리학과가 의대보다 점수가 높았어요. 2학년 때까진 행복했어요. 데모도 많이 했어요. 당시에는 특별히 문제 의식을 안 가진 학생들도 동의할 만한 주제가 있었어요. 고전물리학을 배울 때까진 만족했어요. 뉴턴이 체계를 세운 고전물리학은 체계가 우아하고 아름다웠어요. 3학년 들어가서 현대물리학, 양자역학을 배우면서 회의가 들기 시작했어요. 20세기 후반에 생기다 보니 여러 체계가 확립이 안 돼 있어서 엉성하고, 엄밀한 증명 없이 받아들일 걸 강요했어요. 그때 외도를 하면서 수학과 과목을 많이 들었어요. 물리학과에서 수학과 수업을 듣던 동기 서너 명이 있었는데 다 대학원에서 수학과로 바꿨어요. 저는 프랑스 수학자 갈루아(Galois)의 이론을 배우면서 약간 충격을 받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어요. 수학이 자연의 조화를 표현한다는 생각을 이해하게 됐어요. 그런 생각이 들고 나서 뒤도 안 돌아보고 전공을 바꿨어요. 이번에 서울수학자대회에서 기조강연을 한 황준묵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가 제 물리학과 82학번 동기입니다. 한국 사람 최초의 세계수학자대회 기조강연자죠. 이승철 연대 수학과 교수도 그때 함께 수학과 수업을 듣던 물리학과 동기입니다.”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수학원리응용센터장이신데, 여기는 뭘하는 곳인가요. “교육과학기술부(현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기초과학연구원(IBS) 부설의 국가수리과학연구소가 2005년에 설립돼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고, 아직 뚜렷한 존재감이 없어요. 특히 세계적인 수학연구소와 경쟁할 수준은 아직 못됩니다.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안에 수학원리응용센터를 2013년 11월에 만들었는데, 캠프(CAMP·Center for Applications of Mathematical Principles)라고 부릅니다. 첫 번째 기능은 연구교류를 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수학연구소의 3분의 2 이상이 교류만 합니다. 자체 연구는 아예 안 합니다. 요즘 수학에서 가장 핫한 주제를 정한 다음에 관련 수학자를 세계 전역에서 쫙 모아요. 논의하면서 지지고 볶다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거죠. 역사적으로 수학의 난제는 그렇게 해결해 왔어요. 내년 한 해 동안 어느 분야에 집중하자고 결정나면 세계적인 수학자들을 초청해 세미나를 진행하는 그런 좋은 연구소를 가진 곳에서 중요한 문제가 풀리고 필즈상이 나와요. 이걸 우리도 하자고 해서 캠프 학술교류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성과도 나오고 있어요. 둘째는 수학과 산업의 연계입니다. 이게 한국 수학계가 당면한 또 다른 과제입니다. 외국은 수학과 산업의 연계가 상당히 높은 수준까지 갔어요. 특히 미국의 미네소타주 수학 및 응용연구소(IMA)는 이미 엑슨모빌, IBM, 마이크로소프트 등 세계적인 기업들이 자신의 어려움과 산업의 난제를 가지고 오면 연구진이 그 문제를 같이 푸는 게 20∼30년 됐어요. 산업계 문제를 굉장히 많이 해결했어요. 보잉도 항공기 설계에서 나타나는 여러 문제를 거기서 많이 해결했어요. 한국은 아직까지 기업에서 표시나는 수학의 주요 성공사례가 별로 없어요.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는 산업계가 수학을 안 믿어 줍니다. 산업계가 ‘수학이 도움이 될 리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성공해 본 적이 없으니까요. 미국과 유럽은 수학회와 산업응용수학회가 다 있고 보통 규모가 비슷합니다. 한국은 그 비율이 10대 1쯤 됩니다. 그만큼 수학의 산업응용에 관심 있는 학자가 드물죠. 이번에 서울수학자대회에서 산업문제 세미나를 하고 있어요. 10월에 우리 국가수리과학연구소와 미국 IMA가 산업에 있어서 수학의 역할에 관한 공동 워크숍을 크게 개최합니다. 우리가 IMA에 ‘미국 산업의 난제를 푼 사례들을 수학자들 말고 산업계 사람들이 직접 한국에 와서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이번에 20명 정도 옵니다. 수학자들과 협력해서 푼 사례를 보여줄 겁니다. 그럼 그동안 수학을 안 믿었던 우리 산업계가 자기들도 비슷한 문제가 있는데, 이렇게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볼 게 아닙니까. 셋째 과제가 수학 대중화입니다. 이번에 서울수학자대회에서 하고 있는데요. ‘이매지너리’라고 독일 오버볼파흐(Oberwolfach)수학연구소에서 가져온, 일반 및 청소년 수학 체험 프로그램인데 인기 있어요. 최첨단 터치패널을 통해 난해한 공식들을 그림으로 보고 터치패널을 손으로 바꿔 가면서 수학과 놀 수 있어요. 이매지너리 수학체험은 9월부터는 대전 수학원리응용센터 상설전시관에서 이용할 수 있어요. 전국의 학생들이 버스 타고 수학(修學)여행 가서 진짜 수학(數學)여행을 하게 되는 거죠.” 인터뷰=김세동 차장(사회부) sdg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