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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축구와 수학의 공통점-비옥한 토양 없이 풍성한 수확 어려워

Date: 2014-06-23


[수학으로 보는 세상] <9>축구와 수학의 공통점 김명환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ㆍ대한수학회장 월드컵이 한창이다. 개인적으로 축구를 아주 좋아해 교내 교수 축구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축구에서는 한계에 부딪혔다 싶으면 체력 훈련부터 다시 시작한다. 2002년 우리나라를 월드컵 4강으로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도 그랬다. 맞닥뜨린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기초’로 돌아가는 것이다. 비옥한 토양 없이 풍성한 수확을 기대할 수 없듯이 기초체력 없이 짜릿한 승리를 바라긴 어렵다. 스포츠와 과학의 공통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기초과학이 척박한 환경에서는 산업적으로 의미 있는 원천기술이 자라기를 기대할 수 없음은 자명한 이치다. 문제는 기초과학 연구와 원천기술 개발 사이의 결코 짧지 않은 ‘시간차’이다. 정부가 이 시간차를 인내하지 못하면 창의적인 원천기술의 출현을 기대하기 어렵다. 기초과학 연구의 본질은 자유로운 탐구에 있으며, 자유롭지 않으면 창조적인 사고를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내 수학계에서 최근 이 시간차를 줄이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일고 있다. 그 중심에 지난해 11월 국가수리과학연구소에 문을 연 수학원리응용센터(CAMP)가 있다. 이 센터는 다양한 수학 이론을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기술 개발에 적용함으로써 이론 연구와 기술 개발 사이의 시간차를 줄이는 다리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수학의 잠재적 실용성을 실제 산업현장에서 실현해보자는 것이다. 얼마 전 한 벤처기업이 자체 개발한, 카드 번호를 노출시키지 않는 전자신용카드를 들고 우리 암호연구실을 찾아왔다. 제품을 출시하기 전 안전성을 검증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순수 수학의 한 분야인 정수론과 대수학은 각종 정보통신 기계, 군용 장비 등의 암호 체계를 개발하고 분석하는데 활용되고 있다. 우리 연구실의 검증 결과는 안타깝게도 부정적이었다. 기업으로선 당장은 실망스러웠겠지만,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제품을 그대로 상용화했다간 더 큰 실패로 이어질 위험을 피할 수 있었으니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다행이었다. 이런 역할을 개별 연구실이 아닌 기관 차원에서 좀더 확장하고 체계화하겠다는 곳이 바로 CAMP다. 사실 미국 수리과학연구소(MSRI)와 응용수학연구소(IMA)는 오래 전부터 이런 역할을 해왔다. 그 시기의 학문적 화두 또는 산업계의 당면 문제를 주제로 선정하고 관련 분야 수학자들과 산업계 전문가들을 초청해 소통의 장을 제공했다. 국내 정부출연연구기관 대부분이 소속 연구원들이 과제를 수주해 각자 연구하는 전통적인 모델을 택하고 있는데 반해 국가수리과학연구소가 CAMP를 통해 개방형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한 것은 가히 획기적이다. 특히 우수한 박사후연구원들이 CAMP에서 기업인들과의 소통 경험을 쌓고 학계나 산업계로 진출함으로써 수학의 응용 가능성을 사회 전반에 확산시키는 선순환 구조가 기대된다. 반갑게도 최근 들어 우수한 인재들이 수학과로 진학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줄줄이 의대를 택하던 영재고등학교나 과학고등학교 학생들이 수학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어떤 분야가 미래에 경쟁력이 있을지 학생과 학부모들이 먼저 알아보는 것이다. 올 8월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수학자대회를 계기로 국내 수학계의 새로운 시도가 정착되고 학생들의 수학 선호가 확산되기를 바란다.